21대 총선은 여러 면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을 창출하는 독립적 정치 결사체인줄 알았던 정당이 대놓고 다른 정당 주변을 도는 ‘위성’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 선거였다. 경기에서 선수나 다름없는 정치인들이 법으로 확정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대놓고 무시했고, 현실에선 누가 더 기만적 반칙을 하느냐에 따라 이득을 얻는다는 것도 이번 선거에서 확인했다. 거대 양당은 선거 국면에서 정책과 의제를 내세우지 않았고, 급조된 정당들은 숙성되지 않은 공약들을 남발했다. 정책과 공약이 선거의 중심이었던 적이 드물지만 민
재난 시기에 좀 한가해 보일 수 있지만, 재난 이후의 사회를 위해서라도 꼭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바로 '우리의 세금은 공정한가'이다. 세금이 공정하려면 두 가지만 충족하면 된다. 더 많이 버는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모든 소득에 차별 없이 세금을 부과하면 된다. 이런 원칙을 염두에 두고 현실의 세금제도를 살펴보자. 만일 집을 사고 팔아서 수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얼마가 과세될까. 1가구 1주택자이고 일정 기간 보유한데다 주택의 기준시가가 9억원 이하라면 수억원의 소득이 발생해도 세금을 내진 않는다. 그렇다면 다주택자에겐
한 달 전 미디어오늘 칼럼에서 조심스럽게 제안한 재난 기본소득이 큰 주목을 받는 현안으로 부상했지만 정작 필자는 이 모든 상황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선별적 현금수당이 ‘기본소득’으로 불리는 잘못된 명명에 대한 걱정은 오히려 부차적이었다. 기본소득 연구자로서 세심하게 잘 설계된 기본소득제는 분명 우리 사회를 이롭게 할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필자가 제안한 ‘재난 기본소득’이 우리 사회를 이롭게 할 것이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다소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런 심리를 가진 이유는 기본소득이란 명칭으로 인해 불가피한 여러
골방에서 구상하고 조심스레 꺼낸 아이디어가 이토록 뜨거운 논쟁으로 이어질 줄 예상하지 못했다. 2주 전 미디어오늘 칼럼으로 제안한 ‘재난 기본소득' 이야기다. 이 논의가 보다 의미 있게 진행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들을 보태고자 한다.우선 ‘재난 기본소득'이 관심을 받은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른 재난과는 달리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광범위한 피해'를 주는데도 기존의 방법으로는 피해자를 선별해 신속하게 지원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로 자영업, 돌봄, 제조 공장 등 대면 접촉하는 업종이 경제적 피해를 직접 입고 있지만, 정부 지
지난해 전 국민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할 수 있는 기본소득 재정 모형을 만드는 데 참여했던 연구자로서 이 글을 쓰기가 조심스럽다. 재난을 계기로 내가 했던 연구를 알리려는 것인가라는 자문이 집필을 주저하게 했다. 그럼에도 공론장에서 다양한 모색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 글을 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2월9일부터 18일까지 국내에서 하루 한 명 이하의 확진자가 새로 확인됐다. 주의할 만한 상황이긴 해도 확진자의 증가세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확진자 20명이 늘어난 19일부턴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20일 53명, 21일 50명
미취학 아동인 아이가 부쩍 온갖 종류의 낱말 뜻을 자주 물어본다. 아직 사회 현안에 대한 대화를 나누긴 어렵지만 아이 눈높이에서 이 세상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자주 고민한다. 요즘 설명하기 난감한 단어가 하나 생겼다. 바로 ‘위성정당’이다. 이 단어를 설명하는 가상 대화를 구성해봤다. “아빠, 위성정당이 뭐야?”“위성정당? 오랜만에 듣네.”“무슨 뜻인데? 지구를 도는 달, 그 위성 맞아?”“응. 그 위성 맞아. 지구가 잡아당기는 힘이 있어 달이 우주로 날아가지 않는 것처럼 위성정당도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정당
나는 평소 정치혐오에 반대하고, 정치가 본연의 역할을 하도록 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이지만,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마음 건강을 위해 사회·정치 뉴스를 끊고 싶어진다. 결정타는 민주당 영입 인재 원종건씨의 기자회견문에서 발견한 "명예로운 감투는 내려놓고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가겠다”는 문장이었다. 민주당 영입을 ‘명예로운 감투’로, 그 감투를 내려놓는 상태가 ‘자연인’이라는 이 시각 안에 사람들이 정치를 왜 혐오하는지 집약돼 있다. 정치는 자연인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세계에서의 명예로운 감투라는 시각이 대중의 의심으로만
처음엔 무력한 발버둥이어도 의미 있는 일이라면 언젠가 큰 변화의 흐름이 만들어질 것이라 믿는 편이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의 원작 ‘머니볼’을 좋아했던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영화에선 거의 다뤄지지 않았지만 원작에서 나름 주목한 인물은 식품공장 경비원이었던 빌 제임스였다. 그는 통계라는 관점으로 야구를 보고, 그 분석을 적은 글로 소소하게 책을 출간했다. 그가 28세인 1977년 스스로 복사하고 스테이플러를 찍어 68쪽짜리 ‘야구초록이란 책을 처음 발간했고, 스포츠 주간지에 작은 1단짜리 광고를 실어 75권을 팔았다. 그게 오늘
경향신문이 지난 12월13일자 신문 1면과 22면에 게재 예정이었던 ‘중국에서의 파리바게뜨 상표권’ 관련 기사가 파리바게뜨 운영사인 SPC의 5억원 협찬을 약속 받고 삭제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같은 달 22일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가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알려졌다. 이 사건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독립 언론 기치를 내건 경향신문마저 기사로 뒷거래를 하는 행태가 드러났다며 실망하는 이들도 있고, 용기 있는 내부 고발이라며 자정 노력을 평가하는 의견도 있었다.개인적으로 이 사건과 관련한 가장 인상
연말에야 한 해를 돌아보는 게으름을 반성하면서도, 그나마 이 시기에 돌아보는 기회를 얻는 걸 보면 인위적인 시간의 구분이 고맙다. 이번 연말에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하면 지금이 2010년대의 끝자락이다. 십년간 세상도 많이 변했지만, 언론을 둘러싼 환경은 더 극적으로 바뀌었다. 뉴스가 종이와 방송에서 인터넷이란 생소한 공간으로 가게 된 것도 2000년대 전후부터 십여 년간의 격변이었는데 지난 10년간 다시 또 변해 뉴스가 주로 스마트폰으로 소비되고, 소셜미디어에서 공유된다. 이 기간 기성 매체와 언론인 권위가 추락했다. 어쩌면 당연한